[삼국지 인물] 가후(ENTP)

 

 

 

무위(武威, 지금도 감숙성에 무위는 있다.) 사람으로 가후가 젊은 시절에 아무런 명성도 없었지만 염충만은 가후를 기이하게 여겨 장량,진평과 같은 기이함이 있다고 평가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낮은 벼슬을 하다가 병에 걸려 낙향했는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저족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이때 가후는 자신이 저족들에게 큰 위세를 떨친 당시 태위(太尉) 단영(段潁)의 외손자라고 족보를 위조해서 풀려났다. 당시 수십 명이 함께 붙잡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고, 가후는 자기만 빠져나왔다.

이각과 곽사가 반목하여 서로 싸웠을 때에는 티 나지 않게 황제와 대신들을 보호하면서 은근슬쩍 이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연의에서는 누군가의 조언을 들은 헌제가 마침 가후가 혼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는 나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겠나"라고 했더니, 가후가 "그것은 소인이 원하는 바이옵니다. 저 나름대로 해볼 것이니 폐하께서는 언행을 조심하시옵소서"라고 물러났다. 이 직후 이각이 들어와 그들 앞에서 깝을 친 것은 논외. 이후 황보력이 이각과 곽사의 싸움(이각은 황제를, 곽사는 조정 대신들을 피랍(…)했다)을 중재하다 이각에게 죽을 뻔 하다 살아난 후 도망가면서 서량 출신의 병사들을 선동하자, 가후 역시 서량 출신의 병사들에게 헛소문을 퍼트려 탈영하게끔 했다.

그 뒤 장군 단외 밑에 잠시 있다가 장수(張綉)아래의 모사로 임하며, 압도적인 전력으로 공격해오는 조조를 완전 캐박살내줬다. 또한 조조를 막기 위해 가후가 장수를 설득해 유표와 우호 관계를 맺게 했다.

특히 조조군이 두 번째로 침공해 왔다가 "위격전살지계"를 꿰뚫어 본 가후에 의해 패퇴했다가, 원소가 쳐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후퇴하는 것을 보고 장수와 유표가 추격하려 하자 "지금 추격하면 패배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짜로 졌다. 그들이 돌아와서 "자네 말대로 추격하지 말 걸 그랬네."라고 한탄하자 가후가 "한번 더 추격해보십시오. 이번엔 반드시 이깁니다."라고 했다. 유표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남았지만 장수는 그 말을 믿고 추격했더니 그런데 진짜로(2) 이겼다. 가후는 "처음에는 적(조조)도 추격을 예상하고 방비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졌죠. 하지만 패한 군사를 이끌고 다시 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못하고, 저렇게 급히 돌아갈 정도면 후방을 정리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추격해 이길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 뒤에 관도대전 직전에 원소(袁紹)와 조조의 사신이 같이 오자 세력이 훨씬 더 강한 원소의 사자를 내쫓아버리고 원수나 다름없는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과감한 제안을 한다. 이때 연유를 묻는 장수에게 조조는 황제를 끼고 있어 명분에서 앞서며 세력이 강한 원소보다 세가 약한 조조가 장수를 더욱 환대할 것이며 패업을 이룩하려는 자는 사사로운 원한은 묻어둘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귀순 이후 조조의 측근이 되어 관도대전에선 원소의 군영을 공격할 것을 진언하여 승리로 이끌고. 조조가 형주의 항복을 받고 강동을 정벌하러 나섰을 때는 원정에 반대하며 내정을 충실히 할것을 주장했다.

이후 동관에서 마초(馬超)와 대치할때, 한수(韓遂)와의 사이를 이간질해 서량군을 분열시켰다. 우선 조조는 할 말이 있다며 싸움터의 한가운데로 한수를 불러내놓고는, 그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하였다. 그러나 마초는 한수가 조조와 뭔가 은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여기에 가후가 계책을 내서 그들의 관계를 악화시켰는데, 바로 한수에게 글을 보내되 중요한 대목은 일부러 지워서 보내는 것이었다. 서량군은 강군이긴하나 조조처럼 한명의 군웅 아래 통합된 세력이 아니라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군벌들의 일시적인 연합이었고 한수는 마초의 아버지 마등과도 수차례 협력과 배반을 되풀이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점을 잘 알고있었던 가후는 마초가 의심스런 편지를 보게되면 한수가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어서 일부러 지웠다라고 오해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후로는 눈에 띄는 활동이 없다가 조비가 황제로 즉위한 후 태위에 임명되었다. 다만 군권은 대사마 조인에게 있어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또 후술할 가후 특유의 처세가 더해져 조비 시절에는 그냥 국가 원로로서 대접받으며 조용히 지냈다.

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다른 사람과 극히 어울리기를 꺼려하여, 사적으로 가후와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자식의 혼인도 권문세족과는 맺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조조 정권 내에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일 가능성이 높다. 정황으로 보자면 가후는 조조 세력을 2번이나 박살내놓은 전력이 있는 만큼, 조조 세력 내에서 가후의 계략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일단 조조의 친아들인 조앙과 조카인 조안민이 완성에서 가후의 책략 때문에 죽었고, 조조의 호위를 맡았던 전위도 마찬가지. 조조를 물리쳤던 만큼(비록 조조에게는 용서는 받았다고 해도) 조조 세력 내부에는 가후에게 잠재적으로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멀리 갈것도 없이 가후가 이때 섬겼던 장수는 조비에게 이 일로 수차례 핍박을 받다 죽었다. 또 한 때라고는 해도 동탁, 이각, 곽사라는 역적들 밑에 있었던 것도 정치적으로는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가후는 큰 권력을 노리기에는 약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조조라는 거인이 살아있을때는 그의 신임과 용서 덕분에 안전할 수 있겠지만, 조조 사후까지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 후계자인 조비는 사소한 원한조차 기억하는 인물이었고 일단 눈밖에 나면 과거의 공훈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비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가후를 "너 옛날에 동탁, 이각, 곽사 밑에서 황실을 핍박했고, 장수 밑에 있을때는 무제폐하의 아들, 조카에 심복도 죽였지?"라고 얽어넣으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훅 가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권력을 탐하지 않고 숙이고 지내는 방법을 택했다.

업무에서도 다른 일정 없이 직장-집-직장-집이라는 단조로운 생활을 했으며, 후에 벼슬이 삼공인 태위에까지 이르렀는데 사소한 일을 원인으로 공연히 의심을 살까 두려워하여 얼마 안 있어 은퇴하고 조용히 살다가 곱게 죽었다. 계륵(鷄肋)으로 유명한 양수(楊修)의 일을 돌이켜 볼때, 모사로서 최고의 죽음을 맞은 것인지도 모른다.

유명한 일화로 조조가 후계자 선택에 있어 다소 고민하고 있다 가후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만 있기에 조조가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냐고 묻자 별거 아니라고 대답하다가, 재차 묻자 "그저 원본초와 유경승이 후계자를 고를 때의 일을 생각해본 것 뿐입니다."라는 말을 하니 조조는 껄껄 웃으며 단박에 후계자를 조비로 결정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두 사람이 모두 장남을 후계자로 안 하고 차남이니 삼남이니 갈팡질팡하다가 나라를 왕창 말아먹은 것을 빗대어 조조에게 둘러 간한 것이었다. 이처럼 다른 강골의 문사들과 달리 가후는 주군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모사였다.

그리고 후계자 문제로 조비가 조식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가후에게 가르침을 구했다는 기록도 있다. 참고로, 가후의 계책으로 조조를 한 차례 배신했던 장수는 원소군의 잔당을 토벌하는 중 조비에게 친근함을 보이려다가 조앙의 일에 대해서 면박을 당하고 상심해서 죽었다거나 심지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그 조비가 가후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가후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후가 몸을 사린 이유기도 하고.

아예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가후를 '그의 책략과 안목은 빗나간 일이 없다'며 높이 평가, 순욱과 순유, 가후를 묶어 한 열전에 집어넣었다. 조조의 3대 모사로 띄워 준 것.

가후가 순욱이나 제갈량, 주유와 같은 삼국지의 주류 책사들과 비교할 때 가장 대비되는 점은 수동성이다. 이들 주류 책사들은 한 세력이 나아갈 방향을 잡고 능동적으로 실천했던 인물인 반면, 가후는 어떤 사건이 닥쳐 선택의 갈림길에 서거나 군주들에게서 문의를 받을 시에 거기에 맞는 계책을 짜내었던 인물이다. 초창기 행적을 보면 동탁에게 등용되었을 시절에는 일신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세력의 운영에 있어서 별달리 주체성이 드러나지 않고, 이각과 곽사와 함께할 때 반격의 의지를 다지게 한 것이 대단한 업적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황제 친위세력으로 돌아서더니 다시 사라졌다 이각, 곽사의 한패인 장제의 잔당에 합류하는 등 종잡을 수 없이 표홀함이 두드러진다. 가후는 일생을 천하대세니 국태민안이니 하는 이데올로기 혹은 한 인물에 대한 충절과 같은 감정에 무관한 인생을 보냈으나 그 와중에 조조의 회유를 거부하고 장수가 조조를 치는걸 돕는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것만도 아니긴 하되 자신의 안전과 관련해서는 철저히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위험을 피했다. 가후의 능력과 식견이 거국적인 범위까지, 예컨대 법령이나 행정에 이르기까지를 두루두루 아울렀는지 어쩐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수동성으로 평생을 일관했음은 가후라는 인물의 특유한 성격이라 할 수 있으니, 1인자급 책사들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