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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상처를 극복한 INFP의 조언

by 정보 채널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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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온전해지기 위해서 먼저 생각과 느낌 모두에서 잠시 손을 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실로 내적인 큰 진전은 감정에서부터, 감정을 이해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많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기 이 지구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러한 표현 속에서(여러분의 에너지를 지구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깊은 트라우마들이 쌓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니는 감정들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내적인 성장의 과정을 걷는 모든 사람들은 감정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억누르려 해서는 안되며,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감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감정이 실제 작용하는 방식이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감정과 느낌을 구별해야 합니다. 어떤 용어나 표시로 부를지, 어떠한 이름으로 부를지는 무엇이든 좋지만 본질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에너지를 의미하는 '감정'과 고차원의 형태에서의 이해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느낌'은 구별해야 합니다. 느낌은 여러분의 스승이며, 감정은 여러분의 아이들입니다.

감정은 육체 속에 분명한 실체를 가지는 에너지입니다. 감정은 여러분이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반응입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지게 되었을 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세요. 예를들면, 누군가가 예상치도 않게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여러분은 화를 내게 됩니다. 이것은 몸으로 아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부위들에서 에너지가 긴장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 쇼크가 뒤따르게 되는 이러한 육체적인 긴장이나 수축은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여러분이 부당하다 느끼는 에너지가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부당하게 대우받는 느낌, 요컨대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 감정을 통해 분출됩니다. 감정은 이해하지 못한 것의 표현이며, 에너지의 분출 및 방출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선택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 뭘 해야 할까? 실질적으로 그 감정에 기초하여 행동해야 할까? 이것을 기회로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 해야할까? 아니면 이 감정을 내버려두고, 다른 뭔가에 따라 행동해야 할까?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전에, 느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본질적으로, 감정은 몸으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오해'의 분출입니다. 반면에, 느낌은 본질이 다르며 인식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느낌은 감정보다 더 온화합니다. 느낌은 영혼의 속삭임으로, 부드럽게 다가오며 내적인 앎, 혹은 갑작스러운 직관적인 통로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며 후에는 그것이 지혜임을, 어떤한 앎임을 알게 됩니다.

감정 속에는 언제나 아주 긴장되고 극적인 뭔가가 들어있습니다. 불안, 발작, 두려움, 격노, 혹은 깊은 슬픔을 떠올려 보세요. 감정이 여러분을 꽉 붙잡아둠으로써, 여러분의 중심에서 여러분을 떼어놓게 됩니다.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여러분은 중심, 즉 내적인 명료함에서 자신을 떼어놓는 에너지들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감정은 태양 앞에 구름이 맴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을 억압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은 자기 자신을 보다 더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감정 에너지의 본질은 "오해의 분출"이며 필연적으로 여러분을 중심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사실만을 언급해두고자 합니다.

반면에, 느낌은 여러분을 내면으로, 여러분의 중심으로 더 깊이 데려다줍니다. 느낌은 여러분이 직관이라 부르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느낌은 고차원적인 이해의 표현이며, 감정과 마음을 모두 벗어나 있습니다. 느낌은 비물질적인 세계, 즉 육체를 벗어난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여 느낌은 육체적인 몸의 어느 한 지점에 분명히 위치해 있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뭔가 분위기나 기분을 느낄때 혹은 어떤 상황에 대해 불길한 예감을 느낄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잘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내면에는 외부로부터 오는 일종의 앎이 다가오며 이것은 외부의 어떤 것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이 아닙니다. 이러한 앎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난데 없는 곳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가슴에서 뭔가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앎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순간은 많이 있답니다. 예를들어 우리는 무언가 감자할 수도 있으며 그것들이 때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말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고 단지 느낌으로만 가능하며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감정'보다 '느낌'의 성질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에너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은 평온입니다. 평온은 감정을 벗어난 현상입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내면에서 어떠한 평온을 느낄 수 있고 이로인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을때 이러한 느낌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마치 뭔가 다른 것이 우리를 건드리거나 마치 뭔가 다른 실체를 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쉽게 불러올 수 없으며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부분의 감정에는 언제나 직접적인 명확한 원인이 있습니다.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방아쇠(계기)가 외부 세계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느낌은 우리의 더 큰 다른 차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서 이러한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내면이 고요해져야 합니다. 감정은 이러한 내면의 고요함과 평화를 방해합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차분해져야하며 억눌린 감정들은 반드시 치유하고 해소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연결해주는 느낌에서만 비로소 올바른 앎의 삶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되어야만 우리는 자신의 전 존재로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에 기초하여 살아가는 것은 중심이 없는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감정을 해소해야만 하며, 명료함이 존재하는 내면의 핵심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감정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을지를 살펴봅시다.

느낌은 여러분의 스승이요, 감정은 여러분의 아이들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이는 우리의 감정의 자리입니다. 감정을 대하는 방법과 어린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똑같답니다. 감정적인 면에서 아이들은 솔직하고 즉흥적이며 어른이 감정을 억누르라 하기 전에는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에서 우러나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하여 그것이 아이들이 감정을 온전히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심한 분노, 두려움, 슬픔)에 휩싸이며 대개 이를 멈추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여 중심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이 이처럼 끝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이제 막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감정은 대개 이 세계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따라서 성장하게 되면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대하는데 도움과 지원을 필요로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나 아이들 속에 지니는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할까요?

감정을 판단하거나 억압하려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은 인간으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며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합니다. 감정은 여러분의 관심과 존중, 그리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들입니다. 감정은 치유받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는 에너지입니다. 따라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의식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려 해서도 안되지만, 감정에 몰입해서도 안됩니다. 감정에 몰입하게 되면 감정과 완전히 동일시 되는 그 순간, 내면에 있는 아이는 여러분이 길을 잃도록 안내하는 폭군이 되어버립니다. 감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을 잃지 않으며 의식안에서 감정을 받아들이고 감정의 모두를 느끼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분노를 살펴봅시다. 우리의 몸 속으로 분노를 불러들여 충분히 존재하게 하면 몸의 여러 곳에서 분노를 체험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분노를 관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의식이 치유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오해인 형태"의 감정을 이해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연금술입니다.

아이가 테이블에 무릎을 부딪혀 다쳤다면, 아이는 당황해하고 아파 소리지르며 테이블때문에 다쳤다고 테이블을 걷어찹니다. 아이는 테이블이 자기가 아픈 원인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자신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알아차리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지금 화났구나, 지금 아프구나 하며 그것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문제의 근원을 테이블에서 아이 자신에게로 바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입은 것은 테이블이 아니라 아이, 너 자신임을 말입니다. 부모는 이해와 사랑으로 아이의 감정을 안아줍니다. 아이가 이해하고 인식하는 순간, 아이의 분노는 점차적으로 사라집니다. 몸의 아픔이 남을 수 있지만 아픔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분노는 사라집니다.

이해와 연민의 감정으로 감정을 끌어안을 때, 아이의 관심과 초점을 바깥에서 내부로 돌릴 때, 우리는 아이에게 감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외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해를 선택할 수도 있고 이해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싸우고자 선택할 수 있으며 받아들이고자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우리의 감정을, 내면의 아이와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그러한 감정들을 이해하고자 바라보는 것은 진실로 내면의 아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내부로 방향을 바꿔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은 내면의 아이가 다른 누군가를 해치려 하지 않으며 피해자라 느끼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강한 감정은, 그것이 분노 혹은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언제나 외부의 어떤 것의 피해자라는 무기력한 요소들을 지닙니다.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반응과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감정의 원인이 외부 세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에는 더는 의식이 새어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내면을 향해 방향을 바꾸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자신의 감정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감정을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악의 근원이 외부세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누가 옳고 그른지, 무엇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의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외부의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자유롭게 놓아주세요.

지금,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나는 이러한 감정을 체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감정을 선택한 것은 바로 나란 것을. 이것이 책임을 지는 것이며 용기임을. 자신이 옳으며 무기력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버리고 모든 피해의식에 대한 표현을 놓아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가장 성가시게 하며 괴롭히는 감정들을 우리는 소중하게 그를 계속 껴안고 가고자 합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겸손함입니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필요로하는 우리의 전부입니다. 동시에 내면으로 방향을 바꾸는데에는 최고의 연민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로 진솔하게 감정과 대면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감정을 부드러운 이해로 살펴야 할 것입니다.

분노를 선택하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가 치유이며 의식이 해야하는 역할의 모든 것입니다. 의식은 싸우거나 어떤 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의식은 단지 자각으로 아직은 빛이 밝혀지지 않은 어둠을 에워쌀 뿐입니다. 다시말해, "오해의 에너지"를 이해로 에워쌈으로써 금속을 황금으로 변형시킵니다.

본질적으로 의식과 사랑은 같은 것입니다. 의식적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그대로 두고 여러분의 사랑과 연민으로 그것을 감싸는 것입니다. 대개 감정적인 문제들을 의식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내가 감정을 억눌러왔단 것은 알고 있어, 그리고 그 이유도 알아. 알지만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 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내면에는 그러한 감정에 대한 미묘한 저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저항에 압도당해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감정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저항을 인정하겠다고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선택하면 그 감정은 더는 여러분의 길을 잃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정과 계속해 거리를 유지하는 한, 여러분은 감정과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감정과 싸우고 있는 것이며, 감정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덤벼듭니다. 결국 그러한 감정을 바깥에 계속해 둘 수 없게 됩니다. 이 감정들은 여러분의 몸속에서 통증 혹은 긴장감 혹은 울적한 우울한 느낌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할 겁니다. 마음이 울적해지거나 자주 지치는 것은, 어떤 감정을 여러분이 억누르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의식 속으로 감정을 충분히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감정들이 어떤 곳에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몸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감정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몸 속에는 모든 감정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장 부위에서 긴장과 통증이 느껴진다면 의식을 그곳에 두어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의 세포들이 이야기하도록 하세요. 아니면 바로 거기에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아이에게 몸 속에 어떤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려달라 요청하세요.

여러가지 방법으로 감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감정 안에 갇혀있는 에너지는 움직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해방되고 싶어하며, 따라서 신체의 스트레스 혹은 우울증이란 증상으로 우리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울적함과 같은 감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말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을 느낄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감정은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의 일부이지만, 감정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은 태양을 가리는 구름입니다. 따라서 감정을 인지하고 그러한 감정을 의식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관을 통해, 깨끗하고 균형잡힌 감정으로부터 우리의 내적인 핵심에 접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는 감정에 대해 많은 혼란이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어떠한 문제에도 언제나 많은 논쟁과 혼란이 존재하는 것이 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 줍니다. 아이들은 어른인 우리보다 감정적으로 보다 더 즉흥적이며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행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여러분은 아이들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게 혼란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이들을 훈육해야할까요, 아니면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내버려 두어야할까요? 아이들의 감정을 통제해야할까요, 아니면 내버려 두어야 할까요?

나 자신의 감정이라는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주고 계신가요?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러한 감정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해하고 이러한 감정들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배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여러분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감정이 "오해의 분출"이란 것을 이해할 겁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지 않고 관조하며 놓아줄 수 있을 겁니다. 이해는 감정을 자유롭게 해줄 뿐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우리를 중심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여러분 자신에게 엄한가요? 잠시 화나거나 슬픔때마다 "괜찮아, 넘어가야지" 말하는 훈련을 하고 계신가요? 감정을 억누르나요?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고 빨리 지나쳐야 한다고 여기시나요? 아니면 반대로 감정 속에 빠져있나요? 여러분은 어떠한 것의 피해자라고 스스로를 여기고 있나요? 그 피해에 대한 분노에 매혹 당해 있나요? 그 분노가 출입구가 아니라 생활방식이 되어있나요? 그렇게 치유가 아닌 피해의식 속에 빠져 살고 있나요? 그래서 혼자서 서있는 것조차 정말로 힘든가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하고 감정이 "오해의 폭발"이 아닌 절대적 진실이라 여길 때에 여러분은 그러한 감정에 기초해 행동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의 중심에서 점차 더 멀어지고 있을 겁니다. 감정을 억누른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움과 창조성, 우리의 영혼을 억압하는 행위이며 사회는 가슴의 속삭임보다 규칙에 더 신경쓰고 훈련되고 말 잘듣는 아이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비극들이 지구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내면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오해의 폭발인 것들을 소중하게 계속 자신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들을, 여러분이 자신이라 동일시 하는 감정들을 그로인해 아주 흔하게 겪는 많은 고통들을, 그래서 계속 고수하는 특별함을.

무기력감과 "피해자라는 느낌"을 지금 가져보세요. 이러한 감정적인 패턴에도 이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적인 길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이러한 패턴으로 어떠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나는 것입니다. '난 어쩔 수 없어. 내가 지금 이러한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렇지?' 비록 어두운 구석에 앉아있지만 안전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과 오랫동안 동일시하고 하나가 되는데에 따르는 위험은 자신의 참된 자유, 즉 가장 안쪽의 신성한 핵심과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의 감정과 분개심을 유발했던 것들이 이미 여러분의 삶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들을 의식적으로 접촉하여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 슬픔, 혹은 엄청나게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들을 인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느 시점이 되건 우리는 감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감정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반응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중심에 머무르면서 명료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들에 대해 여러분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한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인식할 수 있으며 삶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올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낡은 감정적인 반응들을 해소하고 나면 우리는 자유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본질은 어떠한 것도 억누르지 않는, 그래서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온전함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용기와 정직이라는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온전함을 찾는다는 것은 대게 이면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의 조각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감정의 조각들과 접촉하고 책임을 지세요. 우리를 샛길로 빠지게 하고 내적인 자유에서 멀어지게 하는 무의식적인 감정의 상처에 이끌리지 마세요.

치유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입니다. 감정의 차원에서 온전해지고 자유롭게 되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상황은 있는 그대로다. 더 어렵게 만들지 말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길은 간단한 길입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내적인 명료성. 이곳에는 특정한 지식이나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장을 위한 모든 것들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합니다. 고요의 순간, 느낌의 자리로 가세요. 이러한 느낌의 자리가 우리의 내면을 명료하게 해주고 정화시켜 줄 겁니다. 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의 의식으로 말하도록 하세요.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세요.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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