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call me'의 첫 구절 'If you don't call me'가 파편처럼 분리되고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쌓아 올리면 이윽고 생경하고 둔탁한 베이스라인이 이어진다. 꽤 급진적인 재료지만 매번 새로운 시도로 케이팝의 활로를 개척해온 샤이니이기에 설득력은 충분하다. 허나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타이틀곡은 언뜻 샤이니 본인보다 이들의 후배 그룹인 엔시티의 'Cherry bomb' 도입부, 그리고 엑소의 'Obsession' 베이스를 조합한 형태처럼 다가온다.
혹자는 그룹 간 공통된 프로듀서인 켄지와 유영진의 존재에서 그 인과를 도출할 수도, 혹은 그들의 공백기 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진 세대 교차나 현대성의 반영을 언급할 수도 있겠다. 간담회에서 밝힌대로 '묵직한 한 방의 컴백'을 원했다는 언급을 고려하면 최신 아티스트의 문법을 빌려 익숙한 경로로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는 방향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낯익은 시작은 그간 쌓인 먼지를 털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첫인상과 달리 'Don't call me'의 후반부는 피아노 선율을 가미하며 작풍에 변화를 주고, 향후 이어지는 곡들 역시 정직하게 샤이니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최근작 < The Story Of Light >가 방대한 세계관을 집약함과 동시에 규모와 콘셉트, 완성도 면에서 모범을 보이며 4인 체제로 돌입한 '포스트(Post)-샤이니'의 전형을 선보였기에, 결과적으로 신보는 'Don't call me'의 첫 단상과는 달리 무리하지 않고 이전 체계를 이행하는 방식을 택한다.
< Odd >의 몽롱한 침잠 효과로 시작을 알리는 'Heart attack',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 (Replay)'의 서사와 감미로운 합창 코러스를 계승하는 'Marry you', 그리고 < 1 of 1 >의 레트로 정서와 댄서블 정신에 입각하며 각각 리드미컬한 기타와 묵직한 베이스의 매력을 살린 'I really want you', 'Kiss kiss'까지. 다양한 수록곡이 그룹의 궤적을 속속 짚어낸다.
발군은 여러 질감의 신시사이저가 교차하며 생동감을 피력하는 일렉트로 팝 'CØDE'와 끈적한 레게 리듬의 'Body rhythm'이다. 시사하는 매력점도 서로 다르다. 우리는 이곳에서 순수 전자음 아래 독특한 멜로디 라인이 약동하는 'Shift'와 'Electric'의 청량감과 동시에 'Sherlock (Clue + Note)'의 서스펜스를 얻을 수 있고, 후자에서는 솔로 활동으로 역량을 증명한 태민의 그루비한 음색과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멤버 간 배치에서 우러나오는 시너지를 포착할 수 있다.
다만 확고한 목표 의식이 존재하던 전에 비해 본작이 주장하는 콘셉추얼한 면은 모호하다. 30분의 짧고 명료한 러닝타임이 지나도 작품만의 또렷한 인상이 잘 남지 않는다. 지금의 이들에게 딥 하우스 열풍을 일으킨 'View'나, 워블 베이스를 도입한 'Everybody' 같은 과거의 진취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규작의 순번을 이어갈 단독 작품이라면 그만한 상징성이 필요하다.
개별 곡은 완성도가 높음에도 '행보 되짚기'라는 의도 아래 편입되며 < The Story Of Light >를 연장한 보너스 트랙처럼 인식되고, 유일하게 외도를 택한 'Don't call me'의 공격처는 후배의 기시감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풍족하게 구비된 에너지를 정갈하게 다듬었다. 퀄리티 역시 번듯하다. 그럼에도 특색보다는 안정성을 지향한 음반이기에, < Odd >나 < The Misconception Of Us >의 아성을 이을 입지적 위치에 미치지는 못한다. 샤이니가 비범함 대신 평범함을 택할 때, 그리고 그 결과물이 무난하고 만족스러울수록, 그 집요하고도 획기적인 구상으로 예상치 못한 에너지를 발산하던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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