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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의 신분 의식(상류층,중산층,하류층)에 대해 제법 퀄리티 높게 분석한 기사.txt

by 정보 채널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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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 종사는 아랫것들이 하는 일”

   
상류층을 형성하는 영국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업으로 하던 기사, 즉 무인(武人)이고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토가 부의 기반이 되는 지주(地主)다. 이들에게 있어 정상적이고 가장 고상한 생업은 봉토를 농노를 이용해 경작해 수입을 얻든가, 소작농에게 땅을 빌려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혹은 대도시에서 자신의 것이거나 왕에게서 빌린 땅에 건물을 지어 그 세를 받아 먹는 것이 최고의 생업이었다. 그들에게는 고급의 전문직이건 아니건 직장에 얽매여서 생업에 종사하거나 무엇을 만들거나 혹은 판매해서 먹고사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중산층이나 하류층이 하는 일이었다.

   
이런 전통이 없는 한국 상류사회의 구성원들은 영국 기준으로는 영원한 중산층이다. 판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전문직종을 비롯해 당대에 부를 이룬 자수성가형 부호,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인 고위 공무원, 바람 한번 잘 일으켜 선출된 정치인, 그리고 세상을 쥐었다 놨다 하는 유명 사회문화 지도층 모두가 영국 사회 기준으로 보면 중산층에 불과하다. 당대의 성취로는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상류층은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영국 귀족은 피가 푸르다고 해서 블루 블러드(blue blood)라 하기도 하고 태어날 때 은수저(silver spoon)를 물고 태어난다고 이르기도 한다.
   

영국 계급제도의 특징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거의 종족이 다르다고 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개념은 아니다. 그래서 장난이나 농담처럼 무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절대 그럴 수가 없는 심각한 것이다. “무엇에 의해 계급이 구별되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으면 바로 조금 전까지도 심각하게 계급의식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영국인도 우물쭈물한다. 


영국인에게 있어 계급의식은 국어문법 같은 것이라 그 개념을 정확하게 정리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구분해 내는 것이다. 이것은 글로써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규정 지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래도 영국인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누군가가 계급 코드에 어긋나는 언행을 할 때면 즉시 주위 사람으로부터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계급 코드를 깬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표시를 안 한다 해도 이웃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비난의 눈짓을 눈치 못 챌 영국인은 없다. 
   
   
 
케이트 어머니 ‘toilet’ 때문에 망신
   

중산층이라는 개념을 예로 들어 보자. 중간 정도의 재산을 가진 층이라는 경제적 의미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 아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류층 말을 쓰거나 교육 수준이 낮거나 교양이 모자라면 결코 중산층에 낄 수 없다. 돈, 교육, 교양, 언어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도덕성, 예의에서 모자라면 이 또한 중산층의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영국에는 “젠틀맨을 만드는 데 삼대가 걸린다”는 말이 있다. 돈 많은 하류층 부모가 자식이 모든 것을 갖추도록 키워도 그 자식은 결코 신분 상승이 되지 않고, 손자대에 가서야 비로소 그 비원(悲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분 상승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고 계급 사이의 간격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 사회를 바꿔 놓아 전 세계에서 존경을 받았던 대처도 총리를 그만두고 상당한 기간이 흐른 뒤에야 고급 사교클럽의 멤버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계급의 벽을 뛰어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이 계급 차이에서 제일 메우기 힘든 것이 말이라고 한다.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 창고 책임자는 사립학교를 나와 런던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지식인이다. 아버지가 공장을 운영하며 돈을 많이 벌어 자식 교육에 투자를 했다. 그런데도 사무직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계급 차이”를 얘기하면서 말을 예로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말은 도저히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계급에 따라 쓰는 단어도 다르고 발음, 악센트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속한 계급에서 쓰는 대로 말하는 것이지 결코 노력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계급을 바꾼 결혼을 해서 그 계급에 끼고자 모든 것을 다 바꾸어도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영원한 지뢰밭”이라는 얘기다. 케이트의 어머니가 왕궁의 모임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화장실을 루(loo) 혹은 레버토리(lavatory)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토일렛(toilet)이라고 해서 상류층 사이에서 ‘역시 천한 것들은 할 수 없어’라고 난리가 났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예다.
   
   
 
대처 총리는 아직도 ‘잡화상 딸’
   

과거에도 그랬지만 영국을 이끌고 있는 것은 상류층의 자제들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오른 중산층의 자녀들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흔드는 동안 상류층은 시골에서 취미로 양이나 키우고 농사나 지으면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 투자나 하며 부유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굳이 밤을 새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매달리는 것은 영국 상류층이 할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영국 상류층이 욕을 안 먹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들이 가진 부와 시간, 그리고 영향력을 이용해 각 분야에서 자선이나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걸 자신들의 임무라 여긴다. 우리의 일부 재벌처럼 온갖 꼼수를 써서 상속세를 덜 내며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의무로 생각한다. 


영국 대도시 건물 주인 중에는 개인이 거의 없다. 상속세가 엄격하고 부의 상속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율의 상속세를 먼저 내야 하니 물려받기도 힘들고 자식이 그것을 받아 봐야 관리도 제대로 안될 바에는 아예 자신의 모교나 사회단체 등에 기증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영국의 대도시 상업 건물은 대개 학교 재단이나 연금공단, 은행, 보험회사 등의 소위 말하는 기관(institution) 소유이고, 시골의 귀족 대저택은 대부분 문화재보호재단(National Trust, English Heritage 등) 소유다.
   
   
이런 것들이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 oblige)라 할 수 있다. 우리 언론은 이 단어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단어를 쓸 때면 꼭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들들이 전쟁에 참전한 것을 예로 든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져 보면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경우가 아니다. 영국 왕족이나 귀족은, 문인(文人)이 귀족인 우리와는 달리 태생적으로 무인이다. 특히 여왕의 왕자들은 예비역 혹은 현직 군인이다. 군인이 나라에 전쟁이 나면 참전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왕자들이 군복무를 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은 그것을 귀족층의 사회적 의무의 표상처럼 치켜세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영국 중산층의 사회적 역할도 상류층의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엄격히 따지고 보면 중산층으로 살아가기는 상류층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시간과 돈이 풍부한 상류층과는 달리 모든 것이 여유롭지 못하다. 반면에 중산층은 하류층처럼 내키는 대로 살 수도 없다. 자식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교양 있는 행동도 해야 하고 문화 수준에 맞는 활동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도 하류층과는 달리 봉사와 자선을 해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영국 중산층들도 수입과 시간을 십일조 하는 식으로 각종 자선과 봉사를 해야 한다. 그런 것들 중 한두 개만 소홀히 해도 바로 신분 하락의 모욕을 당하게 된다. 영국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 살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영국 하류층의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 결여다.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신분 유지 혹은 상승에 대한 욕구나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한 역동적인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영국은 사회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 주어진 틀 안에 안존하는 체념과 패배주의로 점철된 사회다.
   
   
 

솔직히 말해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영국인에게는 우리처럼 금방 신분 유지가 가능하지 않게 되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초조감이나, 잘된 이웃을 볼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고통은 크게 없는 것 같다. 비슷한 동네에서 태어나 함께 교육 받은 같은 여건의 친구가 장가를 잘 가서, 혹은 부동산 투기를 잘해서, 아니면 줄을 잘 서서 졸지에 출세를 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하류층은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어도 종전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그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 여기선 돈이 있다고 신분이 상승되는 것도 아니고 부촌으로 옮겨 간다고 당장 그 부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계급을 떠나 신분 상승을 해 봐야 그것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 의식도 없고 아메리칸 드림도 없다. 그냥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기본 교육만 받고 고만고만한 배우자와 결혼해 지방 기업에서 만만한 직업을 가지고 같이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살다가 자식 낳고 어쩌고 저쩌고 사는 것이 하류층의 꿈이다. 단조롭고 무료한 삶 같아도 이것이 영국인들이 가장 꿈꾸는 ‘예측이 가능한, 그리고 안정된 삶(predictable and secured life)’이다.
   

영국인은 믿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지도층 일부이면 족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바로 그것이 이들이 얘기하는 체제 안의 계급에 충실한 삶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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